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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학생들의 고등학교 생활이 보여주는 한국 교육의 단면

by 점자 배우는 사람 2025.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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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학생들도 모두 같은 교육을 받는 걸까요? 같은 맹학교, 같은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가정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진로를 선택하게 되는 현실을 조명해봅니다. 교육 불평등의 구조를 조용하게 보여주는 이야기.

 

 

 

 

같은 장애, 다른 계급… 그래서 달라진 진로와 미래

장애가 있다는 건,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같은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같은 진로를 선택하거나, 같은 삶을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이 글은 한 시각장애 연구자가 쓴 석사학위논문,
시각장애 학생들을 통해 들여다보는 한국의 교육 불평등 : 고등학교 생활과 진로결정 과정을 중심으로」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같은 학교, 다른 교실, 다른 삶”

연구는 서울에 위치한 한 맹학교의 고등학생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 맹학교 고등부에는 두 가지 반이 존재합니다.

  • 진학반: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반
  • 실업반: 졸업 후 안마사 등 직업교육을 받는 반

학생들은 고등학교 입학 시점에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 선택은 그 학생의 진로뿐 아니라 미래 전체를 가르는 분기점이 됩니다.


진학반 학생들: ‘공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진학반에는 대부분 중산층 가정의 학생들이 속해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부모가 시각장애를 ‘극복 가능한 어려움’으로 여기며
자녀에게 공부를 통해 더 넓은 선택지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입니다.

  • 시각장애를 보조기기나 점자 단말기를 활용해 보완했고,
  • 학업계획과 시간관리, 시험 준비 방식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 이 학생들은 공부를 ‘힘든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였습니다.

진학반 학생들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명문대 진학, 화이트칼라 직업, 그리고 비장애인 사회에의 통합.
장애는 장벽이 아니라 ‘극복 가능한 환경적 요소’였습니다.


실업반 학생들: ‘공부는 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반면, 실업반 학생들은 대체로 저소득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공부보다는 안정적인 기술을 익혀
조금이라도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우선시했습니다.

  • 점자 단말기나 스크린리더 같은 기술의 익숙함도 낮았고,
  • 공부를 도와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 학생 스스로도 공부에 대한 동기나 자신감이 낮았습니다.

이들은 대학 진학보다는 자격증 취득, 빠른 취업, 생계 확보에 더 무게를 뒀습니다.
“대학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라는 말은 드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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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보여준 또 하나의 현실

코로나19 시기 온라인 수업이 도입되었을 때,
진학반 학생들은 비교적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보조기기를 활용하고,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혼자서도 학습을 이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실업반 학생들은 인터넷 환경이나 기기 활용에 익숙하지 않았고,
학습이 완전히 중단되다시피 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동일한 재난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잠시 불편함’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심각한 단절’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진로 선택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
진학반과 실업반 학생의 차이가 단지 노력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진학반 학생은 어릴 때부터 학습 습관을 훈련받고,
    공부를 당연하게 여기는 환경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 실업반 학생은 비교적 방임적인 양육 아래에서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정보나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했습니다.

결국, 같은 학교, 같은 장애를 가진 학생들도
가정의 형편과 부모의 관여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진로를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합니다.

  1. 맞춤형 진로상담 시스템 필요
    • 학생의 흥미, 성향, 생활환경을 고려한 진로지도 체계 마련
  2. 졸업생과 재학생 간의 연결
    • 다양한 경로를 걸은 선배와의 멘토링 제공
  3. 실업반 교육과정 개편
    • 이론 위주에서 실습 중심으로, 실제 취업 연계성을 높일 필요
  4. 성적표의 방식 변경
    • 단순 점수보다, 강점과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식 고려

마치며: 교육은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주고 있는가

장애 학생들이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닙니다.
이 논문은 오히려, 한국 사회 전체의 교육 불평등 구조를 장애학생을 통해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이었습니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정환경과 부모의 지원 여부에 따라 다른 삶을 설계하게 되는 현실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 글은 그 현실을 특별한 감정 없이, 그러나 뚜렷한 시선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 현실을 더 많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불평등을 줄이는 첫 걸음은 ‘정확히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논문 바로 읽기: https://www.dbpia.co.kr/journal/detail?nodeId=T1691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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